한국전래동화

동물들의 나이 자랑 (김명수/이성표)

고양일산 30대 왕자 2011. 7. 5. 15:42

옛날 푸른 숲 속 어느 곳에

노루와 토끼와 두꺼비가 함께 살고 있었어요.

하루는 잔치가 벌어진 이웃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이 음식 때문에 말썽이 생겼어요.

누가 먼저 이 음식을 먹느냐 하는 문제로 말이에요.

 

동물들 사이에도 어른이 먼저 음식을 먹는 것이

순서였나 봐요.

그들은 서로 자기가 나이 많다고 주장하고 나섰어요.

"나이로 치면 내가 어른이지."

노루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가 먼저 음식을 먹겠다고 나섰어요.

 

그러자 토끼가 벌컥 화를 냈어요.

"키가 크다고 해서 나이 많다고 할 순 없어.

 노루, 네가 음식을 먼저 먹겠다는 건 당치도 않아.

 음식은 내가 먼저 먹어야 해."

그러자 그에 질세라 두꺼비가 토끼를 제치고 나섰어요.

"가장 점잖은 이가 나이 많은 법이거든.

 나처럼 점잖은 이가 먼저 음식을 먹어야 해."

 

일이 이렇게 되자 노루는,

한 가지 제안을 하였어요.

"이러지 말고 누가 나이 많은지 따져 보자."

"그래!"

"그렇게 하자."

토끼와 두꺼비도 노루의 제안에 찬성을 하였어요.

 

그러자 노루는 자기가 생각해 낸 꾀를 말하였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 우리들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짐승은 나야.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이 처음 생길 때

 하늘에다 별을 박아 놓은 짐승이 바로 나란 말이야.

 물론 그 때는 너희 조상들도 생겨나지 않았을 때지.

 어때? 이젠 내가 제일 나이 많다는 것을 잘 아시겠지?"

노루가 어깨를 으쓱대며 말하였어요.

 

그러자 옆에서 노루의 말을 듣고 있던 토끼는

갑자기 배꼽을 움켜잡고 웃으며 말하였어요.

"노루 말을 들으니 나도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네.

 그 때, 하늘에다 별을 박을 때 여러 동물들이 애를 썼지.

 아마 누군가가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에 올라가 별을 박았을걸."

"그래, 맞아, 맞아.

 내가 바로 그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하늘에다 별을 박았지."

노루는 토끼의 말을 듣고 그게 정말이라는 듯

신이 나서 사닥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시늉을 하였어요.

 

다시 토끼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어요.

"아마 그랬을 거야.

 그런데 그 사닥다리를 만든 나무는,

 바로 내가 심어서 정성들여 기른 나무라네.

 노루야, 이제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는 걸 알겠니?"

토끼는 앞발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거드름을 피웠어요.

 

그러자 그 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두꺼비가 훌쩍훌쩍 울었어요.

노루와 토끼는 두꺼비가 어른 행세를 못하게 되니까

그게 서러워서 우는 줄 알았어요.

"두껍아, 울지 마.

 어른 행세를 못 한다고 그렇게 울 것까지야 없지 않니?"

"참아라, 참아."

노루와 토끼는 두꺼비를 달래었어요.

 

아무리 달래도 두꺼비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두껍아, 울지 마.

 아무리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도

 이 음식을 나 혼자 다 먹겠니?

 너 먹을 음식은 조금 남겨 줄게."

토끼는 두꺼비를 살살 달래었어요.

 

"그게 아니야!"

두꺼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눈물을 닦았어요.

"그게 아니면 뭐니?"

노루는 자기가 토끼보다 나이 적다는 사실에

심술이 나서 퉁명스럽게 말하였어요.

 

하지만 토끼는,

자기가 이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줄 알고

더욱 신이 났어요.

"노루야, 이놈아!

 두꺼비가 슬퍼하고 있는데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면 어떡하니?

 두껍아,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

토끼의 말을 듣고만 있던 두꺼비가

조용히 말을 시작하였어요.

 

"내가 눈물을 흘린 것은 죽은 내 자식들 생각이 나서 그런다네.

 너희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죽은 자식들 생각이 더욱 나는구먼.

 나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 애들이 모두 아비인 나보다 먼저 죽고 말았다네.

 그 옛날 내 자식들은 모두 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지 않았겠나.

 그 나무들이 다 자랐을 때

 큰아들은 그 나무로 너희들이 하늘에 별을 박는 데 쓴

 망치 자루를 만들었고,

 둘째아들은 그 나무로 은하수를 팔 때 쓴 쟁기 자루를 만들었고,

 셋째아들은 그 나무로 해와 달을 박는 쇠망치 자루를 만들었지.

 그런데 그런 일을 하다가 세 놈 모두 높은 데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네."

 

두꺼비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슬퍼 못 견디겠다는 듯이 더욱 더 서럽게

흐느끼는 것이었어요.

두꺼비의 말을 들은 토끼와 노루는 할 말을 잊었어요.

 

노루는 하늘에 별을 박으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갔다고 하였고

토끼가 그 사닥다리를 만든 나무를 심었다고 하였으니

노루가 토끼보다 나이가 어린 것이 증명되었어요.

그리고 별을 박을 때 필요한 나무를

토끼가 자신이 심었다고 하였지만,

두꺼비는 그의 세 아들들이 심었다고 하였으니

두꺼비가 가장 어른이 되는 셈이었어요.

 

노루와 토끼는 하는 수 없이 이웃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두꺼비가 제일 먼저 먹도록 해 주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은 토끼 차례였겠지요.

결국 노루는 자기가 꾸민 꾀에 자기가 넘어가,

맨 나중에 찌꺼기만 남은 음식을 먹게 되었지요.

옛날 사람들은 별과 달,

그리고 해 모두가 하늘에 박혀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