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동해 바다 깊은 곳에 용왕이 살았어요.
그 용왕은 많은 신하와 바다 백성들을 거느리고,
오색 조개 껍질로 꾸며진 대궐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평화로운 바다 나라에 큰 근심이 생겼어요.
나이가 많아진 용왕이 병이 난 것이지요.
좋다는 약을 다 썼지만,
용왕의 병은 낫지 않았어요.
그래서 신하들은 가장 용하다는 의원을
멀리 남쪽 바다에서 모셔 왔어요.
그런데 용왕을 진찰한 의원은
머뭇머뭇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용왕님의 병환은 고치기가 어렵겠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그것을 구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 한 가지가 뭐요?"
용왕이 다급하게 물었어요.
"뭍에 사는 토끼의 생간을 잡수시면 병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끼는 깊은 산중에 살 뿐만 아니라
날쌔고 꾀 많은 놈이라서,
그 놈의 생간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용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하였어요.
"뭍에 나가 토끼의 간을 구해 와
짐의 병을 낫게 해 줄 용사가 없겠는가?"
용왕은 신하들을 둘러보았어요.
그 때, 저 끝에 있던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어요.
"제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토끼란 짐승을 잡아 오겠습니다."
"오, 고맙도다.
토끼만 잡아 온다면 그대에게 큰 상을 내리리라."
용왕은 매우 기뻐하였어요.
거북이는 한 번도 토끼를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토끼의 생김새를 아는 이에게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였어요.
그림을 가슴에 품고 거북이는 용왕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어요.
거북이는 용궁을 빠져 나와,
며칠 동안 헤엄쳐 육지에 닿았어요.
때는 봄이었어요.
산 속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 있고 신기한 짐승들도 많았어요.
그러나 거북이는 그런 것들을 구경할 정신이 없었어요.
오로지 토끼를 찾을 생각뿐이었으니까요.
산을 몇 개나 넘고 골짜기를 수도 없이 지났지만
토끼를 만나지는 못하였어요.
몇 날 며칠을 찾아다니다가 지쳐 쉬고 있자니,
하얀 짐승 한 마리가 깡충깡충 뛰며 놀고 있지 않겠어요!
그림 속의 바로 그 짐승이었어요.
거북이는 행여 그 짐승을 놓칠세라
헐레벌떡 기어가 말을 걸었어요.
"나는 물 속에 사는 거북이란 짐승인데
우리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토끼가 돌아보니 이상하게 생긴 짐승이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럽시다. 나는 산에 사는 토끼요."
토끼의 대답을 듣고서 거북이는 몹시 기뻤어요.
'옳지, 이제서야 토끼를 만났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북이는
토끼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어요.
"아, 당신이 바로 토끼군요! 만나서 기뻐요.
듣던 대로 정말 훌륭하십니다.
당신같이 훌륭한 분이 사나운 짐승들에게 쫓겨 다니며,
풀이나 뜯어 먹고 살아야 한다니 딱한 일입니다.
내가 사는 용궁에서라면 벼슬을 하고도 남을 텐데......"
거북이가 토끼를 한껏 부추겨 주자,
토끼는 귀가 솔깃해졌어요.
"정말 그런 곳이 있소?"
"있고말고요.
용궁에 가셔서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집들을 보시고,
아름다운 물고기들의 춤도 한번 구경해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바다 나라는 용왕님의 은덕으로
늘 태평 성대랍니다."
토끼는 정말 그 곳에 한 번 가 보고 싶었어요.
"나도 한 번 가 보고 싶지만
물 속에서 헤엄을 칠 수 있어야지요."
"꼭 가고 싶으시다면 내가 도와드릴 수도 있지요.
내 등에 앉아 가시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토끼는 거북에게 속아 넘어갔어요.
토끼는 거북을 따라 용궁을 향해 떠났어요.
오소리, 너구리 등의 산 속 친구들이 말렸지만,
이미 거북이의 꼬임에 빠진 토끼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마침내 토끼는 바닷속 용궁에 도착하였어요.
용궁은 거북의 말처럼 아름다웠어요.
토끼는 좋아서 깡충깡충 뛰었어요.
한 곳에서 토끼를 기다리게 하고,
거북이는 용왕 앞으로 나아갔어요.
"토끼를 잡아 왔사오니,
어서 그 간을 꺼내 드십시오."
"고생이 많았도다.
어서 토끼를 데려오너라."
토끼는 용궁의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 때, 바다 나라 군졸들이 토끼를 밧줄로 묶어 버렸어요.
꽁꽁 묶인 토끼는 용왕 앞으로 끌려갔어요.
용왕이 일어나 앉으며 말하였어요.
"네가 바로 토끼냐? 내 병이 위중하여 너의 간을
꺼내 먹어야 되겠기에 너를 데려온 것이다."
토끼는 자기의 경솔함을 뉘우쳤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어요.
그러나 토끼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빠져 나갈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휴우, 저런!
거북이가 사실대로 말했더라면 제 간을 가지고 왔을 텐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
용왕은 깜짝 놀랐어요.
"저는 간을 한 달 중 보름은 뱃속에 넣어서 다니고,
나머지 보름은 꺼내어 깨끗이 씻어 이슬을 맞힙니다."
"이놈! 세상에 간을 꺼내 놓고 다니다니!
뉘 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느냐?"
용왕은 벌컥 화를 내었어요.
토끼는 다시 침착하게 말을 하였어요.
"제 간이 귀한 약이 되는 것도
바로 그처럼 특이하기 때문입니다.
정 믿기지 않으시면 배를 갈라 보십시오.
제 목숨이야 아깝지 않지만,
간이 없어 용왕님의 병환을 고칠 수 없을 것이니
그게 더욱 딱한 일이지요."
토끼는 배를 용왕 앞으로 내밀었어요.
그 모습이 어찌나 능청스러운지
용왕도 토끼의 말을 곧이듣고 말았어요.
"그렇다면 거북이와 함께 뭍으로 나가
꺼내 둔 네 간을 좀 가져다 줄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해서 토끼는 간신히 살아났어요.
토끼는 거북이 등을 타고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언덕으로 뛰어 올랐어요.
그리고는 거북이에게 소리쳤어요.
"이 천하에 나쁜 놈 같으니!
네 놈을 당장 요절내고 싶지만,
그 충성심이 갸륵하여 살려 준다.
간을 가져다 줄 테니 감시 기다려라."
토끼는 까맣고 동글동글한 자기의 똥을
한 줌 나뭇잎에 쌌어요.
"옛다. 내 간이다."
토끼가 거북이에게 그것을 내밀었어요.
거북이는 고마움에 거듭 잘못을 사과하고
토끼 똥을 가지고 돌아갔어요.
그 뒤, 용왕은 토끼의 간 대신에 똥을 먹고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한국전래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여를 세운 해부루왕 (김명수/노희성) (0) | 2012.03.08 |
---|---|
단군 왕검 (강태형/이양원) (0) | 2012.02.17 |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 (송재찬/김의환) (0) | 2012.02.13 |
바리 공주 (강태형/김성은) (0) | 2012.02.13 |
반쪽이 (김명수/연세희) (0) | 2012.02.08 |